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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근거중에 하나인 백제의 칠지도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 후왕에게 하사한 철제 칼로 61자의 글자가 금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이칼을 통해 백제의 일본 진출과 함께 백제와 일본 두 나라의 친교관계와 백제의 발전된 금속기술이 일본에 전파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에서 삼국의 우수한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는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삼국은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개성있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나갔으며, 그 문화를 일본 열도에 전파하여 일본 고대국가의 성립과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국 중에서 일본 열도의 왜와 가장 친밀했던 나라는 백제였다. 백제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왜와 처음으로 통교하였다. 이때 아직기와 왕인이 논어천자문을 왜에 전수했다고 하며, 현재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칠지도를 왜왕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이밖에 오경박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박사와 화공, 악인 등의 기술자는 물론 불교 승려까지 파견하여 선진문물을 전수해 주었다. 6세기 중반 성왕 때는 노리사치계를 왜에 보내어 불교를 공식적으로 전해주었다.

7세기 경 일본 아스카 문화가 크게 꽃피는데 있어 백제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백제인들은 아스카 일대에 거주하면서 사찰 건립 등 불교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예를 들면 아스카데라와 호류지 등의 사찰에서는 백제의 가람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호류지에는 백제관음’, ‘몽전구세관음상등 백제인 들이 만든 불상이 전해지고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백제인들은 일본 열도로 건너가 많은 사찰을 창건하였고, 일부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일본 율령국가의 성립 · 발전에 공헌하였다.

고구려는 왜와 빈번한 교섭은 없었지만, 승려를 파견하여 문화적 측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영양왕 때 왜에 건너간 승려 혜자는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승려 담징은 회화 기법과 종이, , 맷돌의 제조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담징은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한편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의 가람 배치는 고구려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금당에 안치된 장육불을 조영할 때 고구려가 황금을 보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다카마쓰 고분 내부의 벽화에도 고구려의 영향이 보인다. 고분 벽화에는 현무, 백호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현무, 백호, 주작, 청룡 등의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많이 확인된다. 또한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는 여인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와 흡사한 그림이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에서도 보인다.

신라는 왜와 지리적으로 가까웠으나 군사적 대립으로 인하여, 문화 교류는 백제에 비해 활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라계 도래인으로 여겨지는 하타씨가 일본 열도에서 양잠과 방직을 통해 크게 성장했으며, 일본 국보 1호 미륵반가사유상을 안치하고 있는 코류지를 창건하기도 했다. 이 밖에 배를 만드는 조선술과 제방을 만드는 축제술을 왜에 전하는 등 일본 문화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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