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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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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사회 지배계급 신분제 철기의 제작과 사용이 확산되고 농경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소국과 읍락간에도 경제력과 군사력의 격차가 생겼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은 주변 소국이나 읍락을 정복하고 통합하면서 성장하였다. 확대된 영토와 민을 지배하기 위해서 중앙 권력을 강화하면서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그리고 삼국의 지배층은 신분제로 자신들의 권위를 뒷받침 하였는데 신분제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정치 활동은 무론 집의 크기,관복의 색깔,수레의 장식에 이르기 까지 엄격한 차별이 있었다. 삼국의 사회의 지배체제와 관료제 신분제도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구려 사회는 기본적으로 국왕을 중심으로 형성된 귀족관료제에 의해 운영되었다. 국왕 바로 아래는 관료제의 우두머리도 수상격인 국상이 있었다. 국상 아래에는 여러 등급의 관료들이 있었는데 최종적..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상해임시정부에서 의해 설립된 한국광복군의 활동과 한계에 대하여 알아보자. 윤봉길 의거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로 피신한 임시정부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의 결성과 재정 문제로 겨우 간판만 유지할 정도였다. 김구는 중국국민당의 지원 아래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분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조선 청년들을 모집, 군사훈련을 시켰다. 김구는 한인특별반 출신을 중심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을 조직했고 이들은 이후 김구의 유력한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김구는 1935년 민족혁명당이 결성되고 임시정부해체론이 주장되자 이에 반발, 관내 우파단체의 통일을 주장하며 그해 11월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국민당을 창당했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김구를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는 관내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서재필,이상재등 개화지식인들은 민중의 지지없이 개혁이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민중을 일깨우는 운동을 하였고 자주독립 국가 수립을 목표로 정부관료들도 참여하는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독립협회의 활동과 만민공동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자. 1896년 6월 아관파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개화파와 보수적인 근왕세력이 함께 참여하여 고종의 허가를 받고 독립협회를 창립했다. 독립협회는 조선이 중국에 종속된 사대관계를 청산하여 독립한 것을 기념하려고 독립문 건설과 독립공원 조성 사업을 위해 조직된 민관합동 기구였다. 그래서 독립문은 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웠고, 독립관 역시 청 사신을 대접하던 모화관을 헐고 세웠다. 또한 창립 초기 독립협회는 회장 안경수를 비롯하여 임원진 대부분이 정부 관..